TODAS LAS HISTORIAS / 모든 이야기(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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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그 공동선의 휴지
유럽이 좋았던 것은, 내가 유럽에 산다는 것이 좋았던 이유는, 인류 문화와 유산의 어느 중심점이었기에 시선 끝에 자연스레 밟히는 황홀함도 있었지만, 더욱이 중요했던 것은 유래없이 공고한 인류의 공공선을 이룩했다는 데에 있었다. 나라와 나라를 경계짓고 각축하기에 바쁜 이 지구에서,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이어낸 그들이었다. 자원의 재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사회가 건강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신뢰를 딛으면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했던 굵직한 나날들이었다. 내가 유럽에 발을 딛기 몇 해전에 브렉시트가 성공했으므로 그 연결고리들은 차츰 끊어지던 차였다. 유럽연합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자했던 친구들의 자유로운 왕래가 막혔던 이야기 등 실재하는 이야기들에 담긴 아쉬움 혹은 슬픔 혹은 비판은 먼나라..
2022.09.27 -
남해의 급부상이 기쁜 이유
최근에 회사 건물에서 화장실을 가다가 대문짝만하게 걸린 포스터 하나를 유심히 보게됐다. 입주기업 남해 워케이션 지원 워케이션이란 일(Work)과 휴가(Vacation)을 합친 말로 휴가지에서 쉬면서 일도 하는 문화를 말한다. 쉬러가서까지 일하라는 말이냐! 하기보단 일을 하는데 앞에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프론트원 자체가 스타트업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물이다보니 내가 디캠프(프론트원 관리주체) 담당자였어도 이런 사업을 펴보고 싶었을 것 같다. 우리가 사업이 안정기였다면 적극적으로 건의해봤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 나는 학교도 다니고 있고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다보니 지금 남해를 가서 일한다는 건 우리 팀에는 무리다. 아무튼 코로나가 남긴 몇가지 선물(이라기엔 잔인하..
2022.09.26 -
백로그 도입: 더 힘찬 항해를 위하여
서론 목요일은 학교의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이다. 원래였다면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 줌으로 팀원들과 스크럼을 진행하고선 수업에 들어갔어야겠다. 근데 오늘은 화목에 진행하는 형식언어와 오토마타라는 수업의 교수님께서 자꾸만 휴강하는 수업이 또 휴강을 하게되어(이래도 되나싶다) 오전 일정이 비었고, 팀원들 얼굴보는건 언제나 좋은 일이기에 슬슬 좋아하는 온도로 아침의 공기가 맞춰지는 것을 간만에 여유로이 느끼며 회사로 향했다.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창가에 걸터앉아 대표인 장영이와 프로덕트 얘기를 나눈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고 또 탁상공론을 했나 싶어도 한발짝씩 딛어나가는 것이 분명하다. 슬슬 커뮤니케이션이 조화를 이루고 교통정리가 되어감을 느낀다. 최근 프로덕트 오너로서의 역할을 정의내리면서 습..
2022.09.25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아침에 일어났을 때 후안마에게서 몇통의 음성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으레 그렇듯 내가 알려준 북한 말투를 보냈으려나 했지만 그렇다기엔 꽤 길었다. 당장 등굣길이 멀었으므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읽지 않은 메시지의 설렘과 함께 유독 좋은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본 후에야 그 메시지를 들었다. 내용인 즉슨 본인이 지금 스페인 북부의 빌바오를 여행하는 중이며 그곳 알베르게(우리나라로 치면 민박, 산장 그 어느 중간 즈음의 시설)에 묵는 중에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는 것이었고 그 뒤로는 또 몇몇 시덥잖은 얘기들이었다. 시때가 맞아서인지 그렇게 몇통의 음성메시지를 주고받다보니 등굣길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통해 본 빌바오의 바다는 스페인의 여느 북부 바다가 그렇듯 그저 맑았다. 하늘은 또 그렇게 맑았다. 늘 내가 스페인..
2022.09.22 -
PM이 도대체 뭔데?
스타트업이 붐이다. 정도의 말로 글을 시작하고 싶지만,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등장한 이래로 어쩌면 처음 맞는 혹한기가 아닐까 싶다. 과거 밴처붐이 결국 그 종말을 맞이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은 투자 위축을 야기했고, 당연지사 성장률이 목숨과도 같은 스타트업 씬에서 이러한 자금동결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결국 프로덕트의 가치가 시장의 니즈를 충분히 자극한다면 투자를 받는 건 이후의 일이라고. 이런 말은 한때 유행했던 글을 떠올리게 한다. 당연히 모두의 머리를 강하게 후리는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면 환상적이겠지만, 지금의 스타트업은 '애자일하게, 린하게'를 주문처럼 외우며 (심지어 아이디어 자체가 좋을 때라도) 마켓핏을 찾아가며 성장하거나 그렇지 않고 실패하면 피보팅을 하기를 반..
2022.09.07 -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
다이어트를 할 때면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음식들이 종종 구미를 당기곤 한다. 젤리를 지극히도 싫어하는 내가 어느날 젤리를 먹고싶다 생각했다면 그건 다이어트 중인 것이다. 젤리마저도 그런데 치킨은 얼마나 숭고한 먹을거리겠는가. 그렇게 참고 참다가 치팅데이라든지 목표를 달성한 후 맞이하는 치킨은 가히 치느님이라 불릴만 할 것이다. 따라서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이라는 형편없는 이름은 이렇게 비롯되었다. 일을 진행하고 싶을 때 적기가 올 때까지 겨우 참아낸다면 가치가 없었던 것들이 가치를 갖게 된다든지 원래 가치가 있었던 것들은 기존의 가치를 상회하게 되는 현상. 이를 일컫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때로는 판이한 결과를 부른다. 그래서 그 결과가 좋다면 그건 '터닝포인트..
202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