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S LAS HISTORIAS / 모든 이야기(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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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아침에 일어났을 때 후안마에게서 몇통의 음성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으레 그렇듯 내가 알려준 북한 말투를 보냈으려나 했지만 그렇다기엔 꽤 길었다. 당장 등굣길이 멀었으므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읽지 않은 메시지의 설렘과 함께 유독 좋은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본 후에야 그 메시지를 들었다. 내용인 즉슨 본인이 지금 스페인 북부의 빌바오를 여행하는 중이며 그곳 알베르게(우리나라로 치면 민박, 산장 그 어느 중간 즈음의 시설)에 묵는 중에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는 것이었고 그 뒤로는 또 몇몇 시덥잖은 얘기들이었다. 시때가 맞아서인지 그렇게 몇통의 음성메시지를 주고받다보니 등굣길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통해 본 빌바오의 바다는 스페인의 여느 북부 바다가 그렇듯 그저 맑았다. 하늘은 또 그렇게 맑았다. 늘 내가 스페인..
2022.09.22 -
PM이 도대체 뭔데?
스타트업이 붐이다. 정도의 말로 글을 시작하고 싶지만,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등장한 이래로 어쩌면 처음 맞는 혹한기가 아닐까 싶다. 과거 밴처붐이 결국 그 종말을 맞이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은 투자 위축을 야기했고, 당연지사 성장률이 목숨과도 같은 스타트업 씬에서 이러한 자금동결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결국 프로덕트의 가치가 시장의 니즈를 충분히 자극한다면 투자를 받는 건 이후의 일이라고. 이런 말은 한때 유행했던 글을 떠올리게 한다. 당연히 모두의 머리를 강하게 후리는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면 환상적이겠지만, 지금의 스타트업은 '애자일하게, 린하게'를 주문처럼 외우며 (심지어 아이디어 자체가 좋을 때라도) 마켓핏을 찾아가며 성장하거나 그렇지 않고 실패하면 피보팅을 하기를 반..
2022.09.07 -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
다이어트를 할 때면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음식들이 종종 구미를 당기곤 한다. 젤리를 지극히도 싫어하는 내가 어느날 젤리를 먹고싶다 생각했다면 그건 다이어트 중인 것이다. 젤리마저도 그런데 치킨은 얼마나 숭고한 먹을거리겠는가. 그렇게 참고 참다가 치팅데이라든지 목표를 달성한 후 맞이하는 치킨은 가히 치느님이라 불릴만 할 것이다. 따라서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이라는 형편없는 이름은 이렇게 비롯되었다. 일을 진행하고 싶을 때 적기가 올 때까지 겨우 참아낸다면 가치가 없었던 것들이 가치를 갖게 된다든지 원래 가치가 있었던 것들은 기존의 가치를 상회하게 되는 현상. 이를 일컫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때로는 판이한 결과를 부른다. 그래서 그 결과가 좋다면 그건 '터닝포인트..
2022.09.07 -
스페인에서 어느덧 벌써 열 네 개의 주말을 맞았다. (길게 쓰려던 생각은 없었지만 엄청 길어진 글)
더이상 이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인스타그램에 남기기엔 번잡스럽고 페이스북은 쓰질 않으며 유튜브 영상을 만들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백 년 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글을 정제하거나 할 노력을 기울지 않고 그냥 생각이 흐르는 대로 적어가보려 한다. 2022년 4월 23일 토요일. 날은 어제와 다르게 깨나 좋다. 어제 그렇게 내리흐르던 비는 2층 내 방 테라스까지 가지를 뻗은 오렌지 나무의 잎에나 그 흔적을 남겼지 온 데 간 데 없다. 내 창에서 이런 날 딱 이 시간이면 반대편에서 지는 해가 오렌지 나뭇잎을 뚫고 창으로 들어오는 건 어디 영화에 실어도 모자라지 않을 장면이 분명하다. 방금 막 후안마랑 걔 방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안젤로랑 시모네가 장난치는 탓에 분위..
2022.04.24 -
useRef에 관한 고찰, DOM의 조작
useRef는 .current 프로퍼티로 전달된 인자(initialValue)로 초기화된 변경 가능한 ref 객체를 반환합니다. 반환된 객체는 컴포넌트의 전 생애주기를 통해 유지될 것입니다. 브라우저에서 js의 존재이유는 DOM의 조작입니다.어떤 이벤트를 받아서 처리하고, 있는 객체를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등 모든 DOM의 조작은 js를 사용함으로써 정적 정체성을 탈피합니다.물론 CSS를 통해서도 움직임을 줄 수야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다이나믹한 이벤트 핸들링은 복잡하거나 불가합니다. 문제는 리액트에서 DOM 요소의 조작입니다. 리액트는 렌더링을 하며 virtual DOM이라 불리는 가상 DOM을 먼저 만들고, 그것을 실제 생성된 DOM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는 부분만을 리렌더링하는 방식을 통해 효율성을..
2021.09.12 -
두 교황(The Two Popes), 진리에 관하여
이 모든 영화의 감상에 앞서 한낱 종교적 지식의 얕음과 무지에 혹시나 불쾌하실 분들께 미리 사과드립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겠거니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프롤로그 최근, 살며 유래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급하는 시기를 보냈다. 그럴 수록 좋은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의 경계는 사라져갔다. 모두는 좋은 콘텐츠요, 개 중에 나와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는 어떤 작품조차도 누군가의 인생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교황’은, 보편적으로도 좋게 판단되거니와 나와 맞느냐하는 질문에서 감히 가점을 준 것이다. 1 ‘교회에 다닌다’거나 ‘크리스쳔’이라는 자그마한 네임태그를 떳떳하지 못하게 달고 있는 나는, 구교에 대해선 더욱이나..
202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