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이 도대체 뭔데?

2022. 9. 7. 02:13IT/PM

스타트업이 붐이다.
정도의 말로 글을 시작하고 싶지만,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등장한 이래로 어쩌면 처음 맞는 혹한기가 아닐까 싶다. 과거 밴처붐이 결국 그 종말을 맞이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은 투자 위축을 야기했고, 당연지사 성장률이 목숨과도 같은 스타트업 씬에서 이러한 자금동결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결국 프로덕트의 가치가 시장의 니즈를 충분히 자극한다면 투자를 받는 건 이후의 일이라고. 이런 말은 한때 유행했던 글을 떠올리게 한다.

캡처를 많이 당하면 이렇게 글자 자체의 픽셀이 번진다. 디지털이 가진 몇 안되는 아날로그틱한 부분이다.


당연히 모두의 머리를 강하게 후리는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면 환상적이겠지만, 지금의 스타트업은 '애자일하게, 린하게'를 주문처럼 외우며 (심지어 아이디어 자체가 좋을 때라도) 마켓핏을 찾아가며 성장하거나 그렇지 않고 실패하면 피보팅을 하기를 반복하기가 일상인 곳이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 채 피보팅이 반복되다보면 인건비와 마케팅비를 소진해 나가게 되고 투자금이 마른다든지 일하는 공간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결국 스타트업의 숨통은 슬슬 바닥이 난다. 물론 이것들은 종종 프로덕트의 가치가 끝내 증명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애자일 프로세스를 굴리는 과정에서 프로덕트 매니저(PM, Product Manager)가 등장했다. 기획이 필요한데 앞서 말한 기가 막힌 아이디어 말고(있다면 좋겠지만)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서 그들의 메시지 행간을 면밀히 읽어낼 수 있는 사람. 그 요구의 비즈니스 가치와 조직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가장 최선의 아이템을 가장 빠르게 소환할 수 있는 사람. 애자일 프로세스의 엔진을 돌릴 수 있는 아니 그 엔진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PM이 등장했다.

얼마전 배달의 민족의 "PM의 밤"에서 김용훈 CPO님의 PM의 역할론과 PO라는 역할의 미신에 대해 깊게 공감했다. 본래 PO란 실리콘밸리에서 애자일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프로젝트의 주기성에 따라 플래닝을 하거나 및 소비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역할로서 등장했다. 따라서 중장기적 직군이라기보단 단기적 역할로서 적당한 규모의 프로덕트를 빠르게 성장시킨다. 이에 반해 PM은 이러한 단기적, 주기적 과정을 너머 프로덕트의 생애주기 내내 유저와의 접촉포인트인 UX를 비즈니스 포인트 등의 가용 자원을 고려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맡게 된 역할은 PO이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내딛는 첫발이 스타트업의 PO이다. 사실 줄곧 종래에 PM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한 소프트웨어의 미디어적 롤을 수행하는 가장 이상적인 역할이라 생각해왔다. 다만 PM은 아무래도 매니저 직급이다보니 기획 혹은 개발 단에서 오래간 제품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 상태의 연차 있는 인물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개발을 너무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내게 개발은 PM으로 향하는 하나의 단계와도 같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와 실제로 무언가 '엔지니어링'되는 깊이를 맛보았을 때는 황홀하기도 했으나 그것보다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앞으로 세상에 던져질 수많은 서비스,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진정한 미디어, 그것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좋은 제안들이 많이 있었다. 모 스타트업 대표님께서는 고작 대학생인 내게 iOS 개발자로서 꽤나 좋은 급여와 복지를 약속하셨지만 거창한 계획없이 얼굴이나 보자하고 만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의 동기들과의 몇시간 동안의 자리가 내 미래 계획을 깨나 바꾸어 놓았다. 대놓고 말해 반쯤 되는 페이에 미래가치가 불확실한 회사지분이 실질적 대가이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눈앞의 실질적 대가보다 그 너머의 가치였다. 내가 정확히 원하는 롤에서 가장 도전이 아름다운 나이에 최고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그 이상적 가치들로 내 미래를 선택했다. 분명 모 스타트업 대표님과 함께 했다면 개발자로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내 학기에 대해서 크게 무리 없는 수준의 워크로드와 넉넉한 생활비로 여유롭고 진취적인 학기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위험을 졌다. 분명 인생길에 있어 꽤 큰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불안하진 않은 것은, 분명 이 선택이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하는 목표에 어쩌면 가장 빠르게 다가갈 수 있는 아니 그것을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할 것은 매 순간 얻는 인사이트나 방법론 혹은 어떤 어려움과 그에 대한 해결책 모조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한 발자국 씩 쌓인 것들의 끝에서 이루어 냈을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에 대한 대담한 약속. 그리고 내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겠다는 다짐.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어코 모든 은혜를 갚겠다는 약속에 대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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