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S LAS HISTORIAS / 모든 이야기(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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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으며
귀에 Galli Poli의 노래가 들리는 순간 블로그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새해가 밝은 날부터 생일이 슬슬 기다려지곤 했다. 삼 주 조금 덜 지나는 날에 내 생일이 있으니 신년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생일을 맞는다. 이번 생일은 그러지 않았다. 느긋히 세종에 내려왔다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 여건이 된다면 세종에 조금 더 머물겠다는 다짐 정도의 계획으로 이번 생일을 보낼 준비를 마쳤다. 케이크도 대단한 케이크 없이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골랐다. 그냥 부모님과 얼굴 보고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생일 선물이려니 하면서 집 앞 강을 바라보는 여유를 만끽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이번 생일은 그랬다. 세상에 사랑할 것들이 너무 많은 나머지, 자칫 외로울 수 있는..
2024.01.22 -
부사는 참 좋으니
글을 온전히 쓰려고 하니 하나를 못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임시저장에 쌓여있는 글의 숫자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짧게라도 글을 조금씩 남겨보려한다. 간간히 들러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말에, 특히나 글에 부사를 자주 붙이는 편이다. 수식되지 않은 단어들로부터 형식적인 어투가 묻어나오면 내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한편 인위적인 의성어나 의태어가 붙어있지 않은 순수한 텍스트를 좋아하는 것은 이것들의 연장선이다. 과장된 단어들에서 희석되는 글의 에너지 힘 의미 의도. 뭐 이런것들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게 됐다. 구태여 만드는 낭만이 아니라 놓여졌더니 낭만인 것. 낭만스러우려고 걷는 길이 아니라 뒤돌아보니 낭만인 것. 소설을 써내려가는..
2023.12.04 -
immersed_몰입된
최근에 주호형의 초대로 Burlingame부터 Menlo Park에 이르는 메타 본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은 하루가 있었다.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밥은 맛있었고, 태깅만하면 필요한 전자기기가 무한 제공되는 그 유명한 자판기도 봤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사무실의 책상 결, 들어오는 햇볕의 각도까지도 훑으며 잔뜩 흥이 났던 그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는 하필 길을 잘못들어 구글 본사 단지 안에 갇히게 됐는데, 그 단지의 크기는 마을이라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커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경험은 썩 웃기기까지 했다. 메타 퀘스트 안에 잔뜩이나 빠져 게임과 워크스테이션을 경험했을 때에는 새로운 장난감을 만났을 때의 기분을 꽤나 오랜만에 느꼈음에 진심으로 감동하는 요즘. 요즘 내 일상은 이런 몰입의 연속이..
2023.08.18 -
아메리칸드림, 실리콘밸리는 달이 참 크다
Moffett Blvd.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부터 마운틴뷰의 다운타운까지를 죽 잇는 크고 긴 도로다.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라 꽤나 큰 휴일인 것 같고,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어지는 연휴를 우리는 빡시게 일하기로 했다. 그 끄트머리 격인 오늘 정우형을 그 큰 길을 따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아메리칸드림' 하며 날아와서는 그 말 따나 꿈을 꾸는 듯했던 일주일이 벌써 지났고 슬슬 익숙해지려나보다. 스페인에 있을 때와는 아예 다르다. 작정하고 놀 량으로 아무런 마음의 짐과 장벽도 없이 가서는,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친해지기 바빴고 난 길마다 걷기 바빴던 게 스페인이었다면, 잘 되어가던 혹은 잘 된 취업을 포기하고, 이제 막 시작한 사랑도 멈추어두고, 어수선한 집안 상황마저 ..
2023.07.04 -
추어탕 철학
오늘 점심은 추어탕이다. 냉장고 락앤락에 담긴 추어탕을 그릇에 옮겨 닮고 데운다. 아침에 엄마가 출근 전에 해놓고 가신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경건하게 식사 준비를 마친다. 조금의 준비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켜먹는 것보다 왜인지 조금은 경건해지는 차린 상. 그러다 따듯해진 추어탕을 한 숟갈 떠먹으면 그래 이맛이지 하면 될 것을 정말 찰나의 불쾌함이 스민다. 집집마다의 음식들이 다 다른 맛이 나야할 것이 같은 맛으로 칠해져 버리는게 안타까워서다. 스페인에 갔다오고 나서는 해먹는 요리의 폭이 엄청 넓어졌다. 예컨데 파스타의 브랜드를 구분하고 페스토의 브랜드를 구분하고, 적당한 양의 조미료들과 엄마에게 어릴적부터 수련받아온 칼질에 정갈하게 썰려나가는 야채가 한데에 어울어져 가는 모양새는 (여유로울 ..
2023.05.05 -
음악, 알고리즘의 축복보다는 (나는 왜 음악을 좋아하냐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나아가 음악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많다. 대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각자의 음악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식견이 충분하다. 당장 내가 추천해 주면 좋다고 내내 듣던 중학생 사촌동생이 이제는 내 추천이 식상하다며 등을 돌리는 것만 봐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음악을 듣고 즐긴다. 에어팟 런칭 후, 에어팟 제품군으로만 애플이 미국 시총 10위 기업에 또 다른 금자탑을 세울 수 있다고 하니. 스포티파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힘을 못쓰지만 전 세계를 잠식한 이유라든지, 유튜브 뮤직이 프리미엄에 엮여 무료(처럼보이는) 형태로 제공되며 금세 한국시장 1위를 위협(유튜브까지 더하면 이미 넘은)하게 된 이유는 알고리즘의 축복이다. 내가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