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7. 02:54ㆍVIDA
유럽이 좋았던 것은, 내가 유럽에 산다는 것이 좋았던 이유는, 인류 문화와 유산의 어느 중심점이었기에 시선 끝에 자연스레 밟히는 황홀함도 있었지만, 더욱이 중요했던 것은 유래없이 공고한 인류의 공공선을 이룩했다는 데에 있었다. 나라와 나라를 경계짓고 각축하기에 바쁜 이 지구에서,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이어낸 그들이었다. 자원의 재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사회가 건강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신뢰를 딛으면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했던 굵직한 나날들이었다.
내가 유럽에 발을 딛기 몇 해전에 브렉시트가 성공했으므로 그 연결고리들은 차츰 끊어지던 차였다. 유럽연합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자했던 친구들의 자유로운 왕래가 막혔던 이야기 등 실재하는 이야기들에 담긴 아쉬움 혹은 슬픔 혹은 비판은 먼나라에서 듣던 것과는 조금 궤가 달랐다.
내가 스페인에 있을 때, 안달루시아 지방의 모든 의회에서 우파가 득세했다.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으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우파가 득세했다는 것은 곧 스페인 전체에서도 그럴 것임을 의미했다.
최근 프랑스는 집권여당인 좌파 정당이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본격적인 여소야대가 시작됐다. 프랑스와 같은 이원집정부제에서 현재의 투표가 보여준 것은 우파의 기세였다.
오늘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이후 그 누구도 상상도 못했던 파시스트 정당의 다수당화가 성공했다. 전세대 전지역에서의 승리.
내 상념에서 유럽이 미국과 확연히 궤를 달리하는 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이나 능력주의 대신 분배적 정의를 믿는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패권이 오바마에서 힐러리로 이어지며 좌파역시 능력주의의 우상화에 동참했고 민주주의의 선봉에서부터 정치가 추구하는 바 중 공동선이란 이미 뒷전이 됐기 때문이다. 그딴 고결한 가치는 종교에서나 추구할 법한 것이 되었다.
하여튼 이러한 일련의 선택들이 있었으므로 유럽이 스스로 상정한 정의는 무너졌는가.
단초는 당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공포, 실질적인 에너지난, 코로나 이후 유로화 가치 평가절하 등 눈앞의 물부족부터 경제를 넘어 존재론적 위협이 공동체의 선택을 종용한 데에 있을 것이다. 아무렴 확실한 것은 당분간 인류에게는 당장의 자원과 가치를 보존하고 잃어버린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나라는 문을 잠그고 잠깐 동안 각개의 침묵에 빠지기로 결정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옳은 선택이다. 옳은 선택일까? 늘 다양한 가치가 공존해야하므로, 정치란 말그대로 새와 같아서 좌익과 우익이라는 말그대로 좌우의 날개가 번갈아 혹은 함께 퍼덕여야 비로소 전진한다는 데엔 확고하다. 그러므로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 세상이 우파로 점철된 세상. 투표가 끝나고 멀리 이탈리아에서 전화를 걸어온 안젤로의 말처럼 일단 한번 보자. 당장 우리 삶을, 내 자원을, 우리의 자원을 먼저 공고히 할 때가 지금 인류에겐 필요한 것 같다. 적어도 유럽은 그렇다.
요즘 대학가에 돌아다니는 반쯤 재미있고 반쯤 씁쓸한 사진으로 짓지못한 마무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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