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7. 01:17ㆍVIDA
다이어트를 할 때면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음식들이 종종 구미를 당기곤 한다.
젤리를 지극히도 싫어하는 내가 어느날 젤리를 먹고싶다 생각했다면 그건 다이어트 중인 것이다.
젤리마저도 그런데 치킨은 얼마나 숭고한 먹을거리겠는가. 그렇게 참고 참다가 치팅데이라든지 목표를 달성한 후 맞이하는 치킨은 가히 치느님이라 불릴만 할 것이다.
따라서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이라는 형편없는 이름은 이렇게 비롯되었다. 일을 진행하고 싶을 때 적기가 올 때까지 겨우 참아낸다면 가치가 없었던 것들이 가치를 갖게 된다든지 원래 가치가 있었던 것들은 기존의 가치를 상회하게 되는 현상. 이를 일컫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때로는 판이한 결과를 부른다. 그래서 그 결과가 좋다면 그건 '터닝포인트'가 된다.
내게도 인상적인 몇몇 터닝포인트가 있는데 분명한 포인트 중 하나는 재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다. 군번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재수 시작일인 '2016년 2월 15일'. 6년이 훌쩍 넘은 이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인생의 모든 고삐를 처음으로 벗어던진 망아지가 다시 고삐를 채우기 전 두 달 간, 매일 자유만을 되뇌이며 놀아재낀 것에 대한 부작용이다. 처음으로 친구들 각자가 사각의 교실을 벗어나 무언가 우리의 인생의 궤적이 달라지는 순간. 불안함과 절망감을 애써 감추려하지만 저마다 표정 어딘가에 서렸던 그 감정을 잊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내 수능이, 그 12년의 결정체라는 것이 '좆됐음'을 알았고, 당장이라도 공부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엄청난 불안감이 방학식 직후부터 들이닥쳤지만 웃기게도 생전 느껴보지 못한 '공부의 유혹'을 뿌리치고 놀기에만 집중했다. '그래 질릴때까지 놀겠다. 더이상 집 밖으로 한 걸음 내 딛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노는 것이 혐오스러울때까지 놀아버리겠다' 했다. 그러다가도 문득 혹자의 추가합격 소식이나 재수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릴 때면 '공부의 유혹'은 내 놀기에 대한 집념을 양껏 헤집어 놓으며 폭정하곤했다. 그럼에도 2월 15일 그날까지 꾸역꾸역 공부하기를 참아냈고 그것이 모멘텀이 되어 나는 내 나름 만족할만한 재수생활을 보냈다 회고하곤 한다. 이 때 발견한 것이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이다. 좋아하는 것이든 혹 싫어하는 것이든 해야할 것만 같은 순간을 참고 지나면 끝내 진정 해야만 할 때 질리지 않는다.
교환학생은 또 하나의 내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포인트로 남기려면 분명 소화시켜야 하는데 시도할 때마다 행복과 슬픔의 눈물이 멈추질 않아 여전히 마무리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너무 거대한 시기였고 경험이었기에 내 마음과 몸 어딘가에 체화된 그대로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 교환학생 시기는 참 절묘했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라는 그리도 바라던 프로그램 속에서 일 년을 미친듯이 달렸고, 그 결과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비로소 내가 이 세계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이 보였고 무엇을 공부해야할지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방대한 지식 조각들을 당장이고 모조리 씹어먹어버리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그런 상황에 내가 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행. 지식 혹은 디지털, 소프트웨어 혹은 개발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나는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교환학생 자체가 대학교 입학하고부터의 꿈이었기 때문이었지만 나를 너무도 잘 아는 나이기에 '다이어트 할 때의 치킨' 전략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트랜드가 매일을 앞다투어 변하는 곳이다. 당장 내가 리액트(웹 개발 도구 중 하나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를 사용할 때만 해도 함수형 컴포넌트(새로운 방법론)가 도입되어 클래스형 컴포넌트(구형 방법론)는 모조리 레거시가 되어버렸는데, 갔다오고 나서 내 블로그를 만질 때에는 웬걸 그새 많은 것이 달라져있어 내가 알던 기술 혹은 방법들이 먹히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이러한 시장에서 공백기란 꽤나 큰 상실을 의미함을 나는 알고 있었다. 혹자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하겠지만 아무튼. 당장 어떤 것들을 내가 공부해야하고 익혀야 하는지 눈앞에 뻔한 상황에서도 스페인에서의 축제를 즐겼고 그러다 노트북을 마주할때면 독(Dock) 바 한 쪽에 자리잡은 VSCode(프로그래밍 프로그램)가 눈에 밟혀 결국엔 지우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참고 참기를 몇개월 하다 결국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태극기를 보며 우리나라 땅을 밟았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던 한편 집에 가까워져 갈수록 이제 앞으로 해야할 것들이 슬슬 떠올랐다. 그러자 신이 났다. 다리가 다쳐 입국한터라 당장 돌아다니지도 못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도 없었고,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거니와 캐리어의 짐을 풀기도 버거울 정도로 '이동' 자체가 불가능해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이 전부였던, 그야말로 코딩하기에 최적인 환경이 펼쳐졌다. 방구석에 쌓여있던 책 더미에서 책 몇권을 들추어보았다. '치킨'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리해야할 기억들이 많다. 시시때때로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으로 음성메시지를 보내오는 후안마와 시모네, 안젤로의 연락이 매일 스페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함께 했던 하엔의 3층짜리 집에서 주말이면 걸어가던 '32'까지의 길은 구석구석 생각난다. 때 늦은 저녁이면 불어내어 맥주와 타파스를 나누던 '엘 산투아리오'와 '라 만체가'는 평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나날 매일을 질리도록 달렸던 토레몰리노의 해변. 결국 언젠가 올거라던 마지막은 더이상 미래가 아닌 과거이므로 추억해야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거나 입에 맴돌 때 떠나던 날 너희의 얼굴과 오래간 나눈 포옹과 눈물이 떠올라서 이 감정이 잘 소화되질 않는다. 소화되지를 않아서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정리하기 싫어서 이것도 미루다 어느날 모든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 볼 때 이것도 하나의 '치킨'이려나 하기만 한다.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왔다. 내 자리라고 썼다가 지운다. 내 자리는 어쩌면 거기일 수도 있기에. 그리고 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지라도 해야할 것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눈에 선한 상태. 경주마처럼 가야할 길만이 곧게 뻗어있는 상태. 만찬을 즐길 때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우리의 기억들을 소화하면 그 때에 다시금 내 목표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보고싶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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