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S LAS HISTORIAS / 모든 이야기(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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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달리기
검색어 하나로 2013년도 즈음 써진 글을 통해 아주 오래된 어떤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다. 기록은 2007년 정도에 시작해서 2018년 정도까지 남아있었다. 그 다음 차츰 뜸해진 글은 이젠 더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2009년 친구들과 당구장 내기를 하던 청년은, 2011년 자기 아이가 태어났을때의 감격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직업의 현재와 미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캠핑을 가서 떨어진 밤을 주우면 재밌어하는 삶을 살았다. 일종의 관음인가 싶었던 찝찝했던 시간 후에 쉽게 하지 못하는 기록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해본다. 기록이란 시간이라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글쓴이 멋대로 잘라 이어붙여내는 것이고, 그럼 무조건 특별한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거나 내 지인이 주인공인 어떤 작품. 지금도 틈틈히 글을..
2025.06.07 -
1분기 갈무리
입사와 동시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매일 가슴뛰고 행복했던 지난 3개월을 이제야 돌아보고 정리해본다. 예비군이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마무리되어 해가 아직 지기 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여유로운 햇살을 몸에 녹여낼 생각에 들뜨는 마음 뿐이었다. 집은 이사를 했고, 생각과 달리 아주 포근한 이 동네의 정취에 더해 며칠 전 쏟아졌던 봄비 덕에 만개한 벚꽃길 아래를 걸으며 오늘 예비군 내내 논밭과 함께 했던 잡념들을 가라앚혀보기로 한다. 정말로 직장이 생겼다. 1년 정도를 각오했던 계약직 타이틀이 단기에서 일반 계약직으로 채 넘어가기도 전에 정규직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다른때는 그리 간절해본적도 없던, 그러나 지난 반 년 간 그토록 가지고 싶던 내 삶에 단 하나라도 있었으면 ..
2025.04.26 -
기대되는 한 해를 맞이한다는 것
새해라는 단어는 인생에 아주 좋은 세이브 포인트가 된다. 사실 시간은 굉장히 연속적이니까 작년 아무 두어 달의 시간차와 작년 12월 그리고 올해 1월의 차이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인데, 어떤 하나의 묶음으로 뭉게버릴 수 있는 언어적 수단. 사업 페이즈를 종료하고 취준을 했고, 취업을 했다. 이 세 문장 사이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으나 빠르게 뭉게버리기로 했다. 너무도 그러고 싶었다. 뭉게진 것들 사이에서 어떤 것들은 간신히 삐져나와 아름답게 남아있으니 그것들만 잘 솎아 남겨보기로 한다. 먼저, 내가 하고 싶은 일. 더 크게는 내가 앞으로 직업적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암울했던 취업시장에서 개발자 공고는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다. 길게는 기획쪽으로 가더라도 일단 취업은 해야하니 '취업을 위..
2025.01.18 -
고리타분한 말들을 난 이제 믿으니까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는 쓸데없는 말들을 인생이라는 스케일로 뚜드려 맞은 지도 벌써 두어 달 즈음 됐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것에 정말로 설레었고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경험의 크기가 너무도 컸으므로 거기에서 오는 효능감에 몇 년 더 인생을 갈아 넣어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그러던 게 집안상황이라는 네 음절에 구겨 넣기 아주 힘든 사건들로 취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소중한 순간들은 대표의 배려덕에 정리되는 데에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고 그래서 공허함도 컸다. 빈자리를 어이없음이 채우려다가 닥친 현실이 그렇지 못하도록 했다. 아주 깊이 슬프다 보니 작은 행복을 아주 쉽게 놓치더라. 밤공기에만 발을 놓던 것이 아..
2024.08.29 -
캐리어 정리
에어컨을 켜기엔 아쉬운 데에다 이 덥고 습한 느낌을 마지막까지 누리겠다는 마음가짐이었던 것이 화근이었나, 책상에서 일어나 잔에 얼음을 담으러 너무도 당차게 일어난 발에 캐리어가 차였다. 미국에서 돌아와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들에 좀체 어느 계절을 보내고 왔나 맥락 없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보는 게 역해서 그 모든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캐리어를 정리하는 건 꽤나 큰 일이라 항명해본다. 몇 가지 계절을 뛰어넘고 여름의 초입에 서서 약간은 후덥한 날씨에 선풍기와 얼음 잔에 담긴 커피가 전부인 상태로 옅게 땀을 흘리는 몸이 겨울옷을 만지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겨울 외투가 채 정리되지 않은 방 안의 옷장에서 다시 또 그것들과 씨름 몇 판을 끝내야 비로소 여름옷들이 자..
2024.06.11 -
그라나다 그 사촌들
이들을 만난 건 우연 중에도 참 우연이다. 보통 스페인에서는 EMYCET 이라는 여행 단체를 통해 단체 여행을 많이가고, 시모네의 끈질긴 설득에 나는 결국 이비자를 가게 됐다. 우리는 하엔에서 출발해서 그라나다를 거쳐 발렌시아의 항구에 도착해 거기서 배를 타고 이비자로 건너가는 여정이었는데, 사실 가는 동안에는 무리하게 만들어낸 이비자의 여행 일정 탓에 과제를 하느라 주위를 살펴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 과제는 발레시아에서 이비자로 넘어가는 새벽의 배 안까지도 끝나지 않아 나는 도착한 첫 날 일정 중 밤의 클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정을 참석하지 못했다. 다만 운이 좋게도 숙소에 가는 길에 잠시 보라보라 비치에서 허기를 해결할 겸 내리게 됐고, 이탈리아 친구들과 있다가는 엄청나게 맑은 바닷물을 느껴보..
202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