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내게 더이상 멀지 않아

2023. 3. 8. 20:47ESPAÑA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적 작은 시골에 살며 만난 친구들, 그리고 교환학생을 하며 만난 친구들.

이렇게 계속 유럽의 친구들과 매일같이 연락하고 또 유럽에 돌아가겠다 생각한다면 난 누구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자기객관화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통 그게 힘들다.

내가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에 이성적인 이유가 확보되어 있던가. 순 감성으로만 점철되어있지 않은가. 또 그러면 어떤가. 등.

 

스페인에서 돌아오기 직전에도 몇 백 킬로미터는 되는 거리를 마음먹으면 순 왔다갔다했던 시기들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에 거리가 멀다는 개념을 지워버리자 했다. 사실 다 마음먹기 나름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처럼 마음만 먹으면 어느 도시든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나라도 꽤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국토의 절대적인 크기가 작다는 게 큰 몫을 하지만 말이다.

 

아무렴 진짜 멀다는 것은 이렇게 대륙과 나라가 떨어져 있을 때야 하는 말이다 싶었다. 그들을 보고자 마음을 먹어도 학생으로선 큰 돈을 모아야하고, 큰 기간을 잡아야하고, 큰 마음을 먹어야한다.

 

이제 안젤로는, 시모네는, 후안마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과 다름없는 이들은 정말 멀리에 있다.

 

그러나 종종 안젤로가 여행하는 이탈리아를 보면서, 후안마가 앉아 있는 해변을 둘러보면서, 시모네가 매일같이 욕하는 집 옆 성당의 종소리를 같이 들으면서 유럽 어느곳엔가에 잠시 존재해볼 수 있다. 더이상 막연히 콜로세움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따위로 그려지는 도시의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내게 유럽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유럽은 더이상 내게 멀지 않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언제든 자신의 집 한켠을 내어주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내겐 유럽은 더이상 멀지 않다.

 

하엔에서 우리가 헤어지고 난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상상했던 그대로(어쩌면 더 안좋은 상황으로) 어느새 그 시간에 서 있다. 시간은 흐르고야 말고 필시 노력하면 이루어 진다면, 잠깐씩 다시 그곳에 있는 상상을 해보고 노력을 하므로 그러면 어느새 그 시간에 서 있을 것임을 안다.

 

스페인에 진한 친구들끼리 나누는 표현이 있다.

"Eres mi hermano de otra sangre", 의역하자면 "우린 다른 피를 가질 뿐 친형제나 다름없다."

 

내가 잘 시간이면 너희는 대낮이라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눈다. 적적한 오밤이 너희의 멍청한 웃음소리로 채워지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그 무렵이면 헤어지는 우리의 대화가 가졌던 무게와 진심들이 다시금 귓전을 때린다.

 

보고싶다.

 

 

 

Dongnyeok Shin
Simone Assoni, Italy
Angelo Caputo, Italy & Canada
Juan Manuel Enriquez, Spain & Ch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