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한 말들을 난 이제 믿으니까

2024. 8. 29. 00:15VIDA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는 쓸데없는 말들을 인생이라는 스케일로 뚜드려 맞은 지도 벌써 두어 달 즈음 됐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것에 정말로 설레었고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경험의 크기가 너무도 컸으므로 거기에서 오는 효능감에 몇 년 더 인생을 갈아 넣어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그러던 게 집안상황이라는 네 음절에 구겨 넣기 아주 힘든 사건들로 취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소중한 순간들은 대표의 배려덕에 정리되는 데에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고 그래서 공허함도 컸다. 빈자리를 어이없음이 채우려다가 닥친 현실이 그렇지 못하도록 했다.

 

아주 깊이 슬프다 보니 작은 행복을 아주 쉽게 놓치더라. 밤공기에만 발을 놓던 것이 아쉬워 다음날 설레는 마음으로 쓸데없이 땡볕에 괜스레 돌아다니던 것은 넓어지는 세상에 새로이 다가오는 감각들에 감동하던 내 마음 탓이었다. 더위 때문이야. 날이 더워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라는 변명에 처서를 기다렸고, 엊그제 밤공기에 미묘한 선선함이 담겨 넘어올 때 행복했다. 아주 깊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작은 행복들을 기꺼이 느끼자고 다짐해야 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가진 일상의 행복은 강력했으므로 요 며칠 아주 쉽게 날들을 넘어내었다.

 

존경하는 나의 싸부님의 출근길에서, 싸부님은 함께 세종으로 넘어오는 차 안 내내 일초도 빼지 않고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안에서 애지간히 불편한 내 손을 고쳐 잡아도 놓지 않았던 그 마음이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었구나 깨달으며 고치기를 그만뒀다. 현실을 한탄해 보다가 미래를 긍정해 보다가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하다가 정적이 오면 감사하기에 바빴다. 감사하다. 세종에서 이제 그럼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말해야지. 지난 근 1년 제대로 안부도 묻지 못하고 기쁜 일 슬픈 일에 함께하지 못했던 내 친구들, 내 어른들에 상황을 조심스레 꺼낸다. 여정의 끝이라는 자리들에서 가식 하나 없이 그저 나를 응원해 주는 아름다운 이들에 감동한다. 적적할 때 전화 와서 안부를 물어주는 이들에게도 그저 감동한다. 나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았음을,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나 멋진 사람들이었음을 다시 후비어 꺼내놓고 면면에 아주 깊도록 감사하라고 이 시간이 내게 찾아온 건가 했다.

 

아주 좋은 동력을 얻었다. 늘 사람. 다시 사람. 또 사랑이지만 아주 좋다. 우울하다는 늘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것 같다. 불편하고 안타깝고 짜증 나지만 내게 잠식될 틈도 없이 웃을 일들이 다가온다. 또 새로운 세상과 인생의 챕터를 경험하는 것이 기쁘다. 현실은 현실대로 안타깝게 둬야지. 다만 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지. 하며. 쉽게 기쁠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 쉽게 기쁘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은 복이다. 하며.

 

아주 관용적인 말들이, 특히나 세월을 건너 내게 도착한 그 흔한 문장들이 가지는 힘을 최근 많이 깨달았다. 문장 하나가 긴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기에 여기까지 살아남았을까. 그래서 아주 강력하다. 그래서 난 믿는다. 시간은 약이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다. 하는 말들을 나는 믿는다.

 

여름의 막바지에 또 소나기가 세게 내리더니 집 앞다리 위로 무지개가 떴다가 정말 금세 사라졌다. 이번 챕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서사이지 않을까. 새로운 장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마음 상태로 열렸다. 잘 써 내려가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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