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년 2월의 끝에서 잠깐

2024. 2. 29. 18:59VIDA

시간이 기가 막히게 빨리 간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지만 새로운 속도는 매번 경이롭다. 이번주 스케줄을 생각해 보다가 내일이 3월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재빠르게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잠깐 붙잡아보기로 한다.

 

올해의 시작부터 이월의 끝 날까지 한 일주일이면 맞겠다 싶은 속도로 지나왔다. 윤년이라 하루가 더 주어졌던 것은 감사할 틈도 없었고, 마지막주는 진한 농도로 일에 빠져있었다. 특히 우리가 반년 전 예상했던 비트코인 하입의 시점이 생각보다 조금 더 이르게 왔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은 더 조급해진 것이 있었던 것도 같고, 뉴욕행이 생각보다 더욱 갑자기 결정되면서 한국에서 마무리할 것들을 마무리하느라 더 욱여넣었던 시기였다. 막판에 체력적으로 조금 무리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 끝에 오는 만족감이 더 컸으므로 잘 상충이 됐지 싶다. 어서 팀원들과 함께 살을 맞대고 있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계속 들었던 것도 같다. 롱런하려면 체력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조금 더 스스로가 의식했으면 좋겠다.

 

아무렴 뉴욕을 간다는 생각에 한껏 들뜬다. 대학교때 모아둔 돈과 알바한 돈 이것저것을 끌어모아 무리해서 미국으로 떠났을 때, 뽕뽑자던 마음에 뉴욕의 'ㄴ' 정도는 봤나 할 정도로 마지막에 스치다시피 했다. 그 당시 여행일정이 맞았던 영찬이형이 데려가준 루프탑에서 봤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이야기 튼 커플과 함께 센트럴파크 한가운데에서 일식을 봤던 것을 인생의 경험이라며 만족했지만 거기에 몇 주고 몇 달이고 있는 경험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 아닌가.

 

 

여전히 무비자에 한정된 삶으로 좇겨 가는 것이지만 뉴욕에 장기체류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허드슨 강을 끼고 조깅하는 내가 그려진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그 머리 꼭대기를 살짝 드러내기만 했을 뿐인데도 가슴 뛸 내가 보인다. 그 뉴욕이다.

 

조금 더 기대가 되는 것은 뉴욕을 멋지게 그려내고 있는 나의 존경하는 형님들이 보여줄 면면들이다. 지성이형의 존경스러운 인사이트로 호흡했을 사람군상에 대한 이야기들과 호원이형이 예술인으로서 감각하고 있을 뉴욕. 아 지성이형이 사줄 이건희 회장이 좋아했다는 스테이크까지. 거기에 기가 막히게 푸르러지는 타이밍의 센트럴파크에 잠깐 빠져있을 나 그런 내가 거기서 맺을 인생에 예상치 못했을 여러 인연들. 뭐 이런 것들.

 

며칠 전에 하엔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다연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 건 참 대단한 경험이었다. 스페인의,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도시를 사랑하게 됐다고 하는 한 친구가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던진 그 날 것의 이야기들. 내가 왜 스페인을, 스페인 사람들을 사랑했는가 다시금 구석구석 상기해 본다. 듣는 모든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면 그 내내 행복하다. 그리고 이 친구가 내가 보냈던 시간만큼, 혹은 보다 더, 혹은 완전히 다르게 보내고 와서는 그곳을 사랑하고 추억한다. 이제 더 이상 나만의 소설이 아닌 누군가와 공유하여 실재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건 아주 행복한 경험이었다.

 

결국 다시 미국으로 나가기 직전에 세상에 흩뿌려지는 것에 대한 의미를 환기해 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이 존재해서 내가 어느 한 문화와 공간이 규정한 규범에 따라 그저 존재하지 않기로 하는 것. 그저 작은 먼지일지 몰라도 부유해보자는 것. 결국 내가 진짜 행복한 곳에 더 적극적으로 존재해보려 하는 것. 이게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생각해 봤다.

 

2023년이 끝나고 올해의 여기까지 시간이 짧았던 것보다도 앞으로의 세 달은 더 빠르게 지나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다. 그치만 침착하게 비정형화된 일더미 속에서, (제이지의 말에 따르면) 어떤 꿈이든 이루어진다는 콘크리트의 정글 속에서 나는 이 열정의 온도를 조금 더 높여보기로 한다. 20대의 후반기에서 어쩌면 과분할 수도 있는 경험, 아무튼 대단한 경험을 하러 가니까 참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 번 더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조금 더 멀리에 눈길을 옮기고, 또 상상치 못한 누군가와 부딪치고, 아무튼 아주 부대끼고 오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무렴 세상은 참 사랑할만한 것들의 연속이라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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