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A(17)
-
immersed_몰입된
최근에 주호형의 초대로 Burlingame부터 Menlo Park에 이르는 메타 본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은 하루가 있었다.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밥은 맛있었고, 태깅만하면 필요한 전자기기가 무한 제공되는 그 유명한 자판기도 봤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사무실의 책상 결, 들어오는 햇볕의 각도까지도 훑으며 잔뜩 흥이 났던 그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는 하필 길을 잘못들어 구글 본사 단지 안에 갇히게 됐는데, 그 단지의 크기는 마을이라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커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경험은 썩 웃기기까지 했다. 메타 퀘스트 안에 잔뜩이나 빠져 게임과 워크스테이션을 경험했을 때에는 새로운 장난감을 만났을 때의 기분을 꽤나 오랜만에 느꼈음에 진심으로 감동하는 요즘. 요즘 내 일상은 이런 몰입의 연속이..
2023.08.18 -
아메리칸드림, 실리콘밸리는 달이 참 크다
Moffett Blvd.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부터 마운틴뷰의 다운타운까지를 죽 잇는 크고 긴 도로다.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라 꽤나 큰 휴일인 것 같고,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어지는 연휴를 우리는 빡시게 일하기로 했다. 그 끄트머리 격인 오늘 정우형을 그 큰 길을 따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아메리칸드림' 하며 날아와서는 그 말 따나 꿈을 꾸는 듯했던 일주일이 벌써 지났고 슬슬 익숙해지려나보다. 스페인에 있을 때와는 아예 다르다. 작정하고 놀 량으로 아무런 마음의 짐과 장벽도 없이 가서는,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친해지기 바빴고 난 길마다 걷기 바빴던 게 스페인이었다면, 잘 되어가던 혹은 잘 된 취업을 포기하고, 이제 막 시작한 사랑도 멈추어두고, 어수선한 집안 상황마저 ..
2023.07.04 -
추어탕 철학
오늘 점심은 추어탕이다. 냉장고 락앤락에 담긴 추어탕을 그릇에 옮겨 닮고 데운다. 아침에 엄마가 출근 전에 해놓고 가신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경건하게 식사 준비를 마친다. 조금의 준비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켜먹는 것보다 왜인지 조금은 경건해지는 차린 상. 그러다 따듯해진 추어탕을 한 숟갈 떠먹으면 그래 이맛이지 하면 될 것을 정말 찰나의 불쾌함이 스민다. 집집마다의 음식들이 다 다른 맛이 나야할 것이 같은 맛으로 칠해져 버리는게 안타까워서다. 스페인에 갔다오고 나서는 해먹는 요리의 폭이 엄청 넓어졌다. 예컨데 파스타의 브랜드를 구분하고 페스토의 브랜드를 구분하고, 적당한 양의 조미료들과 엄마에게 어릴적부터 수련받아온 칼질에 정갈하게 썰려나가는 야채가 한데에 어울어져 가는 모양새는 (여유로울 ..
2023.05.05 -
음악, 알고리즘의 축복보다는 (나는 왜 음악을 좋아하냐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나아가 음악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많다. 대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각자의 음악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식견이 충분하다. 당장 내가 추천해 주면 좋다고 내내 듣던 중학생 사촌동생이 이제는 내 추천이 식상하다며 등을 돌리는 것만 봐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음악을 듣고 즐긴다. 에어팟 런칭 후, 에어팟 제품군으로만 애플이 미국 시총 10위 기업에 또 다른 금자탑을 세울 수 있다고 하니. 스포티파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힘을 못쓰지만 전 세계를 잠식한 이유라든지, 유튜브 뮤직이 프리미엄에 엮여 무료(처럼보이는) 형태로 제공되며 금세 한국시장 1위를 위협(유튜브까지 더하면 이미 넘은)하게 된 이유는 알고리즘의 축복이다. 내가 ..
2023.04.26 -
‘인스파이어드’, 감상이라기보단 인상깊은 부분 요약
최고의 기술 기업에서 배운 것 Chapter.1 훌륭한 제품을 이끄는 사람 비즈니스 목표에 맞는 방향으로 기술과 디자인을 통해 고객의 실제 문제를 해결 Chapter.6 실패한 제품의 근본원인 아이디어의 출처 워터폴 프로세스(그런데 이제 애자일이 20%정도-개발에 한해서만-가미된) 모델을 따르면 제품은 마치 외부 용병처럼 그저 열심히 실행할 뿐이다. 대체로 애자일을 한다는 조직들도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 비즈니스 케이스 우리는 절대 솔루션이 야기하는 비즈니스적 가치를 예측할 수 없다. 제품 개발의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제품 로드맵 제품 로드맵의 최소 절반 이상의 아이디어는 기대했던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잠재적 가치를 파악하더라도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어내..
2023.03.19 -
호접몽: 어쩌면 나는 한국에 사는 꿈을 꾸는 스페인 사람이 아닐까
아니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스페인에 있는 꿈을 꾼 한국 사람이다. 으레 생각이 많아지면 글을 쓰곤 한다. 엊그제 잠깐 알맞은 각도로 비춰들어오는 햇살이 만든 알맞은 온도 탓에 낮잠을 잤다. 꿈에서 토레몰리노의 잊을 수 없는 색깔의 해변가 보도블럭을 걷던 나, 주변에는 몇몇 누군가 있었던 것 같았지만 후안마나 시모네는 아니었다. 행인이었나. 그 존재를 인식하려던 차에 바람이 불었다. 따듯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의 결이 너무 생생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미소지으려던 찰나에 어머니께서 만두 삶았다고 깨우시는 그 바람에 깼다. 만두와 엄마의 목소리는 좋았지만 따듯했던 바람과 미소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느끼려 눈을 다시 감았다. 후안마 집은 3층짜리였는데 남정내 세명이 자면서 선풍기 하나가 전부였던 탓에 ..
2023.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