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철학

2023. 5. 5. 18:20VIDA

오늘 점심은 추어탕이다.

 

냉장고 락앤락에 담긴 추어탕을 그릇에 옮겨 닮고 데운다.

아침에 엄마가 출근 전에 해놓고 가신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경건하게 식사 준비를 마친다. 조금의 준비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켜먹는 것보다 왜인지 조금은 경건해지는 차린 상. 그러다 따듯해진 추어탕을 한 숟갈 떠먹으면 그래 이맛이지 하면 될 것을 정말 찰나의 불쾌함이 스민다. 집집마다의 음식들이 다 다른 맛이 나야할 것이 같은 맛으로 칠해져 버리는게 안타까워서다.

 

 

스페인에 갔다오고 나서는 해먹는 요리의 폭이 엄청 넓어졌다. 예컨데 파스타의 브랜드를 구분하고 페스토의 브랜드를 구분하고, 적당한 양의 조미료들과 엄마에게 어릴적부터 수련받아온 칼질에 정갈하게 썰려나가는 야채가 한데에 어울어져 가는 모양새는 (여유로울 때나) 아름답다. 한편 대부분 집들이 김장을 하므로 김치맛은 각양각색이다. 현대화로의 가속페달을 밟는 와중에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 이 김치이지 않을까? 덕분에 김치찌개는 깨나 집집마다 특색이 있기 마련이다. 또 그래서 요즘 모든 집들의 김치가 참 좋다.

 

배달이 엄청나게 보편화되면서, 그리고 1인가구가 많아지면서, 게다가 일하기도 바쁜 삶 속에서 '내 음식'을 해먹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또 기형적인 우리나라 유통시장 모양새는 사먹는 것과 해먹는 것의 가격차가 거의 없도록 만들었고, "그러느니 사먹고 말지"라는 말을 여느 주부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요즘이지 않은가. 친구들 자취방에 놀러가거나 집에서 먹는 대부분의 반찬과 찌개는 밖에서 사온 것들이 많다. 그 차려주는 노고에는 절대적으로 감사하지만서도 우리나라의 맛과 멋이 획일화되어 간다는 생각만은 지울 수 없다.

 

우리 외할머니는 냉면육수를 그렇게 잘하셨다고 한다. 또 명절이면 먹었던 작은할머니의 청국장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맛이다. 그런데 이젠 아무도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엄마는 외할머니 육수를 배워둘걸 하는 후회를 참 자주 하시곤 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더해지다보니 요즘은 엄마한테 나물 무치는 법을 하나씩 배운다. 우리 엄마 나물이 대대손손 전해내려져가야할 가치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나름의 생각에서다.

 

요리는 내 정성과 마음을 참 잘 전달한다. '밥'이라는 게 우리에게 주는 따스함만큼 상대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을 뿐더러 함께 둘러 앉아 맛있게 먹는 시간은 또 소중하니까.

 

아무튼 이런 걸 다 뒤로 하고, 오늘 먹은 추어탕 집은 진짜 추어탕 잘하는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