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정리
에어컨을 켜기엔 아쉬운 데에다 이 덥고 습한 느낌을 마지막까지 누리겠다는 마음가짐이었던 것이 화근이었나, 책상에서 일어나 잔에 얼음을 담으러 너무도 당차게 일어난 발에 캐리어가 차였다. 미국에서 돌아와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들에 좀체 어느 계절을 보내고 왔나 맥락 없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보는 게 역해서 그 모든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캐리어를 정리하는 건 꽤나 큰 일이라 항명해본다. 몇 가지 계절을 뛰어넘고 여름의 초입에 서서 약간은 후덥한 날씨에 선풍기와 얼음 잔에 담긴 커피가 전부인 상태로 옅게 땀을 흘리는 몸이 겨울옷을 만지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겨울 외투가 채 정리되지 않은 방 안의 옷장에서 다시 또 그것들과 씨름 몇 판을 끝내야 비로소 여름옷들이 자..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