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8. 11:25ㆍIT
"작지만 강하다."
다양한 곳에 쓰이는 관용적인 말이지만
아이패드 미니5는 근래 이에 가장 어울리는 기기이다.
애플이 새로운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미니를 소리소문도 없이 공개했다. 다음날엔 이어 에어팟2를, 마찬가지로 키노트 없이 홈페이지에만 살며시 걸어놓았다. 왜? 키노트의 황제라던 스티브 잡스를 좇아 공개행사라는 행사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애플이 사람들이 목빼고 기다리던 두 제품의 키노트를 생략했다는 데에 모두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제품이 별 게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추측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아이패드 미니는 바로 직전 공개한 프로라인이 채택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계승하지 않았다. 아이패드 미니1부터 지루하게 이어오던 '그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했다. 에어팟2 역시 다양한 색깔이 등장할 것이라던 기존의 추측을 뒤로 져버린 채 같은 디자인에 무선 충전케이스와 조금 향상된 칩샛, 조금 향상된 배터리, 그리고 "시리야". 끝이었다.
결국 키노트에서 모든 의문은 해소되었다. 애플은 커질 대로 커진 파이의 하드웨어 시장보다 소프트웨어라는 바다로의 항해를 시작하겠다는 선언을 이번 키노트로 했다. 정확하게는 거대하고 공고히 다져놓은 자신들의 iOS와 MacOS라는 소프트웨어의 밭에서 서비스라는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어보겠다는 것이다. 애플 뉴스와 애플 TV+, 애플 아케이드까지 이르는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운 플랫폼들을 소개하는 자리였기에 뜬금없이 새로운 하드웨어를 공개했다면 어색했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세 가지 서비스를 모두 사용하지 못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나는 지금 그 아이패드 미니5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응? 무슨소리냐고? 그러니까 나는 이 제품에 완전히 매료됐고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그것도 비싼 것. 또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라면. 아이패드 미니5는 전작인 미니4가 출시됐던 2014년 이후 처음 등장한 후속모델로 무려 5년만의 등장이다. 그만큼 대기수요는 어마어마하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던 모델이 바로 이 모델이다. 하지만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 아이패드 미니를 처음 마주했을 때 실망 가득 한숨을 쉬었을지 모르겠다. 아이폰X(텐)을 시작으로 애플은 새로운 디자인 시대를 보여주었다. 터치ID에 종말을 고하고 페이스ID가 시작되었다. 물리적 홈버튼은 사라졌고 이제 홈버튼은 스와이프가 대신한다. 배젤은 가능한한 줄어 트랜디함은 보여준다. 그런 시기에 등장한 새 모델에 새 디자인을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 그것도 미니니까.
그러던 우리가 마주한 건 익숙했다. 심지어 아이폰7부터 진작 사라진 3.5파이 이어폰 단자까지 넣어주는 친절함을 보여주는 애플. 아마 주형을 재활용하고 남은 재고들로 마진을 창출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아이패드 미니4와는 버튼 위치가 미묘하게 달라서 케이스는 재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만약 살지 말지를 최소한 고민은 하는 상태라면 자신있게 "사도 됩니다! 아니, 사세요!" 하고 말할 것이다. 애플 제품을 쓰면서 여태껏 이렇게 만족도가 높은 제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니까 겉은 트랜디하지 않아도 속은 너무나도 트랜디한 이 녀석이기 때문이다.
먼저 프로세서는 아이폰XS가 가지고 있는 A12 바이오닉칩을 달고 나왔다. 프로가 가진 A12X 바이오닉은 아니지만 못지않다. 전례 대로라면 아이패드 미니는 당해 최신 프로세서보다 한 세대 아래의 것을 달아 나오곤 했는데 최고의 것을 가지고 나온 건, 간만에 내놓은 미니라 작심한 것이거나 우려먹는 미니의 디자인이 미안해서 일 것이라 추측된다. 덕분에 멀티테스킹은 괄목할 만 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렇게 '왓챠플레이'로 미드를 보면서 옆에서 카톡으로 친구와 대화를 하고 필요한 정보를 웹서핑 하는 모든 과정은 어떠한 딜레이도 없이 이루어 진다. 다만, 유트브와 넥플리스, 유튜브와 왓챠플레이 등과 같이 영상-영상의 멀티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프로세서의 한계를 벗어 났기 때문이라기 보단 애플이 소프트웨어 상에서 오디오 출력이 동시에 두 개 이상 이루어 지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단지 멀티테스킹의 능력때문만은 아니다. 디스플레이 역시 전작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아이패드 미니1을 사용했다. 처음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는 당시 아이폰4s가 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채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의 노력만 기울여도 (어쩌면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픽셀 갯수를 셀 수 있을 것만 같다(이건 오바다). 또한 프로세서도 별 차이가 없었다. 멀티테스킹이란 애초에 소프트웨어 단에서 제공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이패드보단 작고 아이폰보단 큰 화면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 누가 보아도 아이패드 미니1을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 미니5는 지문방지와 더불어 반사방지 강화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는 것처럼 빛이 비출 때 화면을 마주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시말해 넷플릭스를 보다가 거뭇한 화면이 나와도 내 얼굴을 보고 놀라 콧대나 이빨이 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다. 아이패드 미니1은 조금 있다가도 비교를 위해 잠시 등장할 예정이다. 또 픽셀의 집적도는 역대 아이패드 중 최고 스펙을 자랑한다. 326ppi(pixel per inch)라는 수치는 아이패드 프로의 264ppi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그만 하고 싶지만 아직도 많다. 디스플레이는 전면 라미네이팅 처리 되어있어 기존 아이패드 유저들의 불만 중 하나였던 에어갭(강화유리와 실제 화소부분과의 공간)이 사라지다 시피 했다. 색조 영역은 와이드 컬러 디스플레이(P3)를 채용해 기존보다 훨씬 정교하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와이드 컬러 디스플레이가 뭔지 알 필요는 없다. 우리는 빨간색을 조금 더 빨간 것과 조금 덜 빨간 것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좋은 것들을 때려넣은 디스플레이의 향상은 강력한 구매요인이다.
두께는 약 1mm 정도 줄었고 크기는 가로 동일 세로는 약 1mm 정도 늘었다. 보시다시피 뒷편은 일반 싸구려 플라스틱의 느낌에서 어느정도 질감이 있는 메탈로 바뀌었다. 무게는 와이파이 모델 기준으로 300g이라 1세대와 동일한데, 직접 들어본다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없어진 후로 재등장하지 않는 무음 똑딱이 버튼은 당연히 없고 스피커는 스테레오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영상 볼때 스피커가 좌우 스테레오 임에도 가로로 돌리게 되면 하단에만 달려있는 탓에 소리가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그래도 평소에 영상 볼 때는 주로 이어폰으로 봐서 크게 상관은 없지만 조금 아쉬운 점! 그래도 아이패드 미니4의 주형을 그대로 사용해야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놔두어야 했던 것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잠시 개봉기적 컨셉을 빌리자면, 구성은 다를 바가 없다. 언제나 늘 그렇듯 제품과 케이블 설명서를 빙자한 애플스티커 주머니, 그리고 충전기. 시크한 애플은 이어폰 따위 넣어주지 않는다. 이어폰은 당신이 사야한다.
아쉽게도 충전기는 10W짜리이다. 북미판이나 몇몇 국가에서는 12W를 기본으로 넣어준다고 하는데 이런 차별은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아이패드미니는 원래 고속충전을 지원하기 때문에 15W 내지 18W까지도 번들 지원을 기대해볼만 했는데 살짝 의외인 부분중에 하나.
그러나 '디자인드 바이 애플 인 캘리포니아'는 많은 것들을 용서하게 해준다.
신부의 면사포를 들어내듯, 반투명 비닐에 가려진 사과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애플은 새로운 기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와 즐거움을 주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낼 줄 안다. 평소에도 느꼈지만 이번 아이패드는 여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푹신하면서도 단단하게 아이패드를 고정시키고 있던 박스를 열어젖히는 순간 상자를 꽉 조여매고 있던 비닐이 서서히 느슨해지며 아이패드를 꺼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 과정을 보면 잠깐의 경탄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말고도 아이패드 상자를 열때 꼭 맞아 떨어져있는 상자와 상자뚜껑은 정말 느긋하게 분리되면서 기기를 마주하는 순간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 시킨다. 이런 디테일, 이런 디테일이 소비자가 제품을 마주하는 순간의 황홀함을 배가시켜주는 것이지 않을까.
기업 가치관에 매료된 소비자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소위 '앱등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인 소비를 하지는 않는다. 돈이 넉넉히 있었다면 그랬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디자인, 성능 이 외에도 다양한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비에서 기업의 가치관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같은 성능이면 차라리 맥북말고 그램을 사겠다." 라든지, "아이패드 말고 갤럭시 탭 사 이번에 잘나왔던데?" 하는 조언들은 통하지 않는다. 애플이니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성적 소비가 아닌 감성적 소비도 소비의 이유가 충분히 된다. 게다가 애플이 지난 기간 iOS와 MacOS를 통틀어 놀랍도록 발전시켜온 연속성(Continuity)에 한 번 빠진다면 당신도 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아이패드 미니5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프로세서에 이런 디스플레이. 이런 퍼포먼스를 능히 보여주는 기기라면 고려해볼만하다. 만약 고려하고 있었다면 사야한다.
포스팅을 하는 동안 배터리가 17%정도 달았다. 유튜브를 보며 네이버와 사파리를 왔다갔다하는 중인데 한시간 반 정도에 이정도면 참 괜찮다 싶다. 결론적으로 너무 만족스러운 이번 아이패드 미니, 만약 고민하고 있다면 주저않고 사시길,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면 이유를 만들어 보시길 바란다는 거다.
그럼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을 보러 가야겠다:)
'I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의 급부상이 기쁜 이유 (0) | 2022.09.26 |
---|---|
iOS 13,어두운 화려함 (베타8, 퍼블릭베타7) (0) | 2019.08.25 |
WWDC2019, "우리 음악이나 같이 들을까요?" (0) | 2019.06.10 |